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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주한미군 얼굴 공개…모친 충격 인터뷰
- 2023. 7. 19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가 월북한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Travis King·23)의 얼굴이 공개됐다. 킹의 모친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월북 사실에 충격을 드러냈습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ABC방송 계열 WISN-TV는 월북 장병 킹이 위스콘신주 러신 카운티에 연고가 있다며 그의 얼굴과 모친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킹의 어머니 클로딘 게이츠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그런 짓을 벌인 적이 없다”며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짓을 벌였을 것이라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아들의 월북 당일 미 육군으로부터 해당 사실을 전해들었다는 킹의 모친은 “나는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아들이 미국 집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킹은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무리에 있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 화상회의 뒤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월북한 미군 장병은 자기 의지로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킹은 한국에서 현지인들과 말다툼 후 수용시설에 47일간 구금됐고 석방 후 한국 내 미군기지에서 약 1주일 간 감시를 받았다. 그는 미국 송환 후 텍사스주 포트블리스 기지에서 추가 징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킹은 공항 호송 후 비행기를 타지 않고 도주,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 JSA 견학에 참여했으며 돌연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답니다.

그와 같은 견학단에 속해 있었다는 목격자는 “판문점의 한 건물을 견학했을 때였다. 한 남성이 갑자기 크게 ‘하하하’ 웃더니 건물 사이로 뛰어갔다”고 전했다.

미 당국자는 킹이 호송 인력이 따라갈 수 없는 공항 세관에서 도망친 것 같다고 CNN에 전했답니다.

제4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 제2여단전투단 제1대대 소속
2년간 복무에도 이등병 계급…“징계로 진급 보류 시사”

미 육군 대변인 브라이스 두비에 따르면 킹은 2021년 1월 정찰병으로 미군에 입대했고 한국 순환근무 기간에 본래 텍사스주 포트블리스에 위치한 제1기갑사단 제1여단전투단 제1기병연대 제6대대에 배속됐었다.

현재 행정적으로는 미 육군의 제4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 제2여단전투단 제1대대 소속이랍니다.

한국 내 구체적인 근무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킹은 군복무 중 한국 국방훈장 등 훈장 3개를 받았는데 주한미군이 흔히 받는 훈장들로 알려졌다.


미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닷컴은 2년 동안 복무한 킹의 계급이 이등병인 것은 징계 등으로 진급이 보류됐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답니다.

미 육군에서 12개월간 복무한 이등병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동으로 일병으로 진급한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한편 킹이 한국에서 경찰 순찰차를 걷어찼다가 기소돼 올해 초 벌금형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19일 언론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공용물건손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킹에게 지난 2월 8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답니다.

판결은 피고인과 검찰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트래비스 킹 이등병은 작년 10월 8일 오전 3시 46분 서울 마포구에서 폭행사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홍익지구대 순찰차 뒷좌석의 오른쪽 문을 수 차례 걷어차 망가뜨린 혐의를 받았다.

과거 월북한 미군들, 北 영화에서 ‘악당 미국인’ 역할 맡으며 체제선전 활동
- 2023. 7. 19

전날 주한미군 군인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월북한 가운데 과거 월북한 미군 병사들의 삶이 재조명 되고 있다. 월북 미군들은 북한 영화에서 ‘악당 미국인’ 역할 등을 맡으며 체제선선 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답니다.

앞서 1962년부터 1965년까지 DMZ에 근무하던 미군 병사 4명이 탈영하여 월북했고, 이들 중 찰스 젠킨스를 제외한 3명은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찰스 젠킨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월북 초기 이들은 문화와 식습관의 차이, 북한 내부의 반미정서 등으로 적응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4명의 월북 미군은 간소한 단칸방에서 생활했는데 하루에 10시간씩 김일성의 사상을 강제로 학습해야 했고 정기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견디지 못한 이들은 1966년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평양 주재 소련 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을 했지만 소련대사관의 거부로 실패했다. 이후 북한에서 고강도의 사상교육을 받으며 1972년 북한 시민권을 부여 받고 각자 따로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계속 감시를 받고 구타와 고문을 겪어야 했다. 월북 미군4명은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영화산업에 동원됐는데 1978년 개봉된 북한 첩보시리즈물 ‘이름 없는 영웅들’에 참여했답니다.

1962년 첫 번째로 월북한 미군은 주한미군 사병 출신 래리 앨런 앱셔다. 그는 1983년 40세의 나이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같은해 사병 출신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이 월북했다. 드레스녹은 홍철수라는 북한 이름을 사용하며 2016년 사망 때까지 대부분의 인생을 북한에서 보냈다. 드레스녹은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루마니아 출신 도니아 붐베아와 결혼해 자녀를 낳았다. 드레스녹은 북한 TV·영화 선전물에서 배우로 활동했는데 대부분 그가 맡은 역할은 ‘악당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3년 월북한 특수 요원 출신 제리 웨인 패리쉬는 1998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사관 출신인 찰스 로버트 젠킨스는 1965년 1월에 월북했다. 그는 2004년 납북되었다 일본으로 간 일본인 아내를 따라 일본에 정착했다. 젠킨스는 자서전에서 “세 명의 미국인 병사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이용가치가 높은 냉전 시대의 전리품으로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때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때론 음모를 품고 북한을 공격하는 미군 함장역을 연기하는 영화배우로 살았다고 밝혔답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고를 치거나 군 생활을 하기 싫어 월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월북한 미군은 폭행 혐의로 한국에서 체포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드레스녹은 1962년 외출증 위조혐의로 군법회의 직전 월북했다. 젠킨스는 군생활에 염증을 느껴 소련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신청하면 포로 교환을 통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월북했답니다.